日의 맛 리모델링한 英콘란숍…첫 타석에 '맛의 홈런' 터졌다

입력 2024-02-15 18:32   수정 2024-02-16 11:58


일본의 모노즈쿠리(もの 造り: 숙련된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미래를 향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만의 특별한 것을 만들고 더 잘 큐레이션하고, 표현하고 싶다. 엄마의 찬장을 꺼내 보는 듯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일본의 키친을 더콘란숍에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자연이 빚어내는 식재료로 요리하는 사람, 공간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디자인하는 사람. 이들 각자가 원하는 목적을 위해 따로 또 같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작업들. 단순히 기술만이 빛을 발하는 시대에 복합적인 아이디어와 협업이 만드는 보다 큰 생각의 공간들에 사람들은 눈을 돌린다.

일본 도쿄의 새 랜드마크, 아자부다이힐스가 그렇다. 64층 높이의 메인 타워와 함께 일본 최고 도시개발업체인 모리빌딩이 시행한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이자 거대한 도시정원인 아자부다이힐스는 ‘모던 어반 빌리지’를 콘셉트로, ‘그린’과 ‘웰니스’를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 결과 도쿄라는 도시 거주자들을 위한 대형 녹지 조성과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예방 의료시설, 국제적인 교육기관, 최고급 럭셔리 레지던스와 호텔 브랜드 등을 겸비한 미래형 도시 공간이 완성됐다. 이 안을 채우는 수많은 브랜드와 기관, 콘텐츠 중에 강렬하게 관심을 끈 곳이 있다.

1974년 영국에서 시작해 프랑스 일본 그리고 한국에 분점을 운영하고 있는 프리미엄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인 더콘란숍과 그들이 최초로 디렉팅한 레스토랑 ORby다.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수없이 간 도쿄의 콘란숍이지만 이들의 레스토랑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연말 더콘란숍 재팬의 대표 나카하라 신이치로와 ORby의 셰프 곤노 마코토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더콘란숍 재팬의 대표인 나카하라는 1997년부터 랜드스케이프프로덕트라는 토털 디자인 그룹을 이끌며 인테리어, 공예, 디자인, 가구 등에서 그만의 너른 감각을 선보였다. 더콘란숍 재팬의 대표로 취임한 건 2020년. 더콘란숍 다이칸야마점에서 ‘큐레이션’이란 용어의 확장성과 정점을 보여줬다. 더콘란숍 내에 카페 공간을 만들고, 지역 공예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아자부다이힐스의 ORby는 새로 문을 연 더콘란숍 바로 옆에 있어 지금까지의 방향성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ORby의 셰프 곤노는 2005년부터 일본 내 내추럴 와인신을 주도한 인물이자 Organ, Uguisu 등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일본 식재료를 적극 사용한 페어링의 진수를 선보이는 것으로 이름났다.


낯설고 거대한 공간에서 헤매다 찾아낸 더콘란숍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의 편안한 감각에 의해 꾸며진 평범한 곳에서 접할 수 있는 비범함을 느낄 수 있다. ‘엑스트라 오디너리(extra ordinary)’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공간. 더콘란숍의 창업자인 올비 콘란 경이 떠오른다. 레스토랑의 이름 역시 콘란 경의 이름에서 따왔다. 레스토랑 ORby엔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오픈 키친과 긴 바가 들어섰다.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 식기 등도 더콘란숍에서 판매하는 오리지널 디자인 제품들. 단순히 최고급 기물로만 공간을 꾸민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요소의 조합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자연스럽다. “최상의 것을 아는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평범함이라는 콘셉트를 다이닝 공간으로 끌어왔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ORby의 공간과 음식들은 셰프의 이전 레스토랑에서 느낀 것들에 비해 다소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과거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오래 체류하며 와인을 탐미하고 요리한 덕에 자유로움과 투박함의 어떤 경계에 서 있었다. 이곳은 꽤 다르다. 곤노 셰프는 “현대 가구와 오브제가 어우러지는 맛의 밸런스, 은은한 멋에 대한 중요성을 ORby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고 했다. 옅은 탄산감이 있는 레드 와인과 베리의 단맛, 무의 시원함이 결합된 첫 코스는 첫 타석부터 터지는 홈런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구운 겨울 채소와 조금의 토마토소스로 싸 먹는 타코의 순수한 맛도 잊을 수 없다. 메뉴마다 기대되는 근사한 시적 표현,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요리의 산미, 소스로 뽑아내는 무게감, 은은한 재료 본연의 감미는 반드시 와인 페어링을 함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스의 작은 접시 하나하나에서도 페어링 되는 와인의 질감과 뉘앙스, 향미까지 세심하게 설계되는 결합은 그저 아름다웠다.

ORby에서 사용되는 도자기와 공예품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곤노 셰프는 한국의 ‘마나 서울’에서 팝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전통시장의 생동감과 식재료의 매력을 끌어올린 한국 세라믹 브랜드 Iaac이 마음에 들어 ORby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나카하라에게 공예와 콘란숍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서도 생활 공예와 공예 작가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그것은 트렌드가 되고 산업이 돼가고 있다. 일본의 모노즈쿠리(もの 造り: 오랫동안 숙련된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미래를 향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돼가고 있다. 우리만의 특별한 것을 만들고, 더 잘 큐레이션하고, 표현하고 싶다. 엄마의 찬장을 꺼내 보는 듯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일본의 키친을 더 콘란숍에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곤노 셰프도 자연스레 생각을 공유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20·30대는 루이비통 샤넬 같은 럭셔리 아이템의 소비를 지향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 세대는 자신이 가진 ‘희소성 높은 취향’을 자랑하고 그것에 몰두해 소비하는 것이 도드라진다. 내추럴 와인숍이 유행하게 된 문화적인 감성도 그에 이어진 현상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재미있다.”

ORby가 생각하는 소비자 타깃층과 기대하는 문화적 영향은 무엇이냐는 다소 뻔한 질문에도 그들은 무척이나 멋진, 설레는 현답을 꺼내 줬다.

“이곳에선 누구나 ‘거대한 상업시설 안의 레스토랑에서도 이렇게 세심하게 만들어 내는 요리와 와인의 페어링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자극을 받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내추럴 와인 페어링의 경험이 없거나 적은 이들도 곤노의 요리를 통해 작은 문을 활짝 열 수 있기를, 또한 내추럴 와인을 공부하고 즐기길 원하는 이들에게도 무궁무진한 즐거움이 되길 바란다.”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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